고급 원전 인력 해외 유출 본격화 우리 원전 안전까지 위협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지난해 12월 13일 열린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발대식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왼쪽 여섯번째), 정우택 의원 등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우선 어느 산업 분야보다 탄탄하던 우리나라 발전산업을 강타하고 있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 2018년 1조원 안팎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2015~2016년 각각 2조5천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탈원전 원년이던 2017년에 8천600여억원으로 순익이 급감한데 이어 지난해엔 대규모 적자 전환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한국 남동·남부·중부·동서·서부발전 등 5개 발전 공기업도 각각 200억~3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들 발전 공기업은 2017년만 해도 1천억~2천억원의 이익을 냈다. 한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80% 넘던 원전 가동률이 60%선까지 떨어지면서 값비싼 연료로 전기 생산에 나선 탓이다. 이 같은 발전 공기업들의 적자 전환은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 아픈 것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산업의 붕괴 우려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원전기업인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6%나 급감했다. 임원 30명을 줄이고 과장급 이상 전원을 유급 휴가를 보냈다. 경영 악화가 지속되면서 사장은 취임 9개월 만에 퇴임했다. 협력업체 수백 곳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한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 꼴이다. 울진 신한울 3·4호기 공사 중단으로 울진 경제도 치명타를 입고 있다. 아파트 공사가 중단되고, 원전 건설 백지화 후 3천여 명이나 빠져나가 지역 상권도 크게 위축됐다.

 

탈원전 계속되면 국내 중소·중견기업들 고사, 원전 수출 힘들어

 

후유증이 만만찮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고급 원전 인력의 해외 유출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력기술,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PS의 ‘원전 인력 퇴직자 현황’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들 공기업에서 원자력 관련 근무자의 해외 이직은 2015년 1명, 2016년 0명이었으나 지난해 9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도 5명이 한국을 떠났다. 이직자가 향한 곳은 모두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아랍에미리트(UAE)다.

한전기술 등은 원전 관련 핵심 업무를 하는 곳이다. 한전기술은 주로 원전 설계, 한수원은 운영, 한전KPS는 유지·보수를 담당한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설계 분야에서 인력 유출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향후 ‘원전 선진국 한국’의 경쟁력 저하는 물론 우리 원전 안전까지 걱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원전 산업 생태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원전 산업 인력은 해외 원전 추가 수주가 없으면 현재 3만8800명에서 2030년에는 3만명 미만으로 감소한다. 고(高)부가가치 산업인 원전업계 종사자 네 명 중 한 명이 12년 안에 실직(失職)한다는 예측이다. 원전 산업 인력은 2015년 3만5330명이었다가 이후 박근혜 정부의 원전 증설 계획으로 3년 새 9.8% 증가했다.

탈원전 정책의 명분인 ‘국민 안전’ 역시 위협받는다는 역설적 결과도 나왔다. 보고서는 “국내 원전 예비품·기자재 납품 업체의 시장 이탈로 인해 원전 안전 운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적었다. 원전 산업 생태계 붕괴로 예비 부품 공급에 차질이 오고, 운영·유지보수 업체도 상당수 문을 닫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 최초로 원전을 건설했던 영국은 1995년부터 원전 건설 중단으로 기술력을 상실했고, 최근 원전 건설을 재개하면서 프랑스와 중국 업체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다. 전문가들은 “탈원전이 계속되면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고사하면서 원전 수출은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전 수요 다시 늘어날 수 있는 점 감안해야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장기적 큰 틀에선 맞는 방향이다. 세계적으로 원전보다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추세에도 부합한다. 문제는 속도가 너무 급격하다는 점이다. 앞으로 온난화에 따라 석탄화력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고 신재생에너지 공급 능력이 예상만큼 확대되지 않으면 원전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는 탈원전을 외치기 전에 그것이 가능한지 현실적인 여건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여론이다. 우리나라 전력 공급에서 석탄화력과 원전이 작년 말 기준으로 39.3%, 30.7%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미세먼지 발생으로 노후 화력발전소가 폐쇄되는 마당에 원전까지 중단한다면 에너지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경제력에서 뛰어난 원자력의 강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전원별 전력 생산단가는 ㎾h당 원전이 48원으로 가장 저렴하다.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 169원, 풍력 109원보다 월등히 싸다.

그런데도 정부는 2017년 기준 24기인 원전을 2031년 18기, 2038년 14기까지 단계적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로드맵은 현재 7%인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0%까지 확대하기 위한 추진방안을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장기적 에너지 전환 목표는 맞지만 현실성이 결여돼 있기에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 갤럽 여론조사 결과 원자력발전 이용을 찬성(69.5%)하는 국민이 반대(25.0%)하는 국민보다 세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대만이 탈원전 정책을 도입한지 2년 만인 2018년 11월 국민투표로 폐기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대만 국민 결정은 탈원전을 추진하는 과정이 대한민국과 비슷하고 에너지 수급과정이 닮은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대목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원자력·화학 분야 전국 57개 대학교수 210명이 모여 세운 학술단체인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 등 전문가들이 일제히 정부를 향해 “우리 정부도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원자력학회도 국민 의사를 물어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고 에너지 문제에 대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안전성과 경제성이 떨어져 없앤다고 하면서 외국엔 우리 원전을 사라고 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급기야 탈원전 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서명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민심 이반’이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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