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비준, 위헌적” vs “위헌이라는 말 자체 성립안돼”

 "1992년 기본합의서만 대상" "평양선언도 재정소요 동의 필요"

여야 정치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4일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비준한 것을 두고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갈수록 불통과 독선으로 치닫고 있다” “문 대통령의 ‘마이웨이’ 비준” 등 맹비난을 쏟아냈고, 청와대와 여당은 “올바른 조치”라고 두둔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국회 패싱은 위헌적 행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자유한국당은 24일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동시에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이 국회의 비준 동의를 패싱하는 것은 모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시행령부터 공포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 출생 신고 먼저 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헌법에 따르면 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며 "대통령의 비준 행위는 헌법적 절차를 무시한 위헌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최교일 의원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본 합의문에 대해서는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았고, 세세한 내용은 국회 동의를 받았는데 그 절차가 맞다"며 "구체적인 후속 합의서는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탄스러운 문재인 정부의 '마이웨이 비준’이라는 제하의 글을 올리고 “‘평양 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발효시키기 위한 비준안이 오늘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됐다”며, “불가역적 비핵화는 요원하건만, 불가역적 경협과 안보 무장해제의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서 확인된 것은 오히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때까지 대북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유럽 각국의 확고한 비핵화 우선입장이었다”며, “면전(유럽 순방)에서 한 방 먹었음에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확보했다’며, 아전인수식 자화자찬을 하더니, 오늘은 국회도, 야당도, 군사합의에 대한 동맹국의 우려도 모두 무시한 채 '마이웨이 비준'을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여당 “법리오해에서 비롯, 위헌 아냐”

청와대는 이날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국회동의 없는 비준이 위헌이라는 일부의 주장과 관련, 북한과의 합의는 헌법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주장 자체가 오히려 위헌적 발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부 언론과 야당이 헌법 60조를 근거로 남북군사합의서가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근본적인 법리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위헌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헌법 60조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 조약의 요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조약이라는 것은 문서에 의한 국가 간의 합의를 말한다. (조약 체결의) 주체가 국가인데, 북한은 헌법과 우리 법률 체계에서 국가가 아니다”며, “따라서 북한과 맺은 합의나 약속은 조약이 아니기에 헌법이 적용될 수 없고 위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남북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이를 국무회의에서 비준한 것은 올바른 조치”라며, “이제 국회는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을 신속히 처리해야 마땅하다. 판문점선언을 찬성하는 절대다수 국민의 바람에 화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청와대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15일 각종 국제법과 국제기구 규약 등에 따르면 조약은 꼭 ‘국가 간 합의’만 뜻하지 않는다.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 2조 1항에 의하면 조약은 서면 형식으로 국가 간에 체결되고 국제법에 의해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다. 그런데 이후 채택된 ‘국가와 국제기구 간 또는 국제기구 상호 간의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은 국가와 국제기구 간 또는 복수의 국제기구 간 합의도 조약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 당사자로 참여했다.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경수로공급협정도 맺었다. 외국 사례를 보면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평화협정 과정에서 교전단체에 해당하는 PLO도 조약 체결 주체가 됐다.

우리 헌법 60조는 국회는 상호 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과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등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합의서는 조약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남북합의서는 조약이 아닌 신사협정에 불과하다며 예로 든 1997년 헌법재판소 결정과 1999년 대법원 판결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법원이 조약이 아닌 신사협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남북합의서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다. 이것은 1992년 노태우정부 시절 남북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한 합의서다. 검찰 출신 북한법 전문가인 한명섭 변호사는 “이 판결의 남북합의서는 남북한에 체결된 모든 합의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고 7년이 지난 2006년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면서 그때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를 ‘남북합의서’로 규정했다.

평양선언은 국무회의 비준만으로 충분하다는 정부 측 설명도 논란 소지가 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21조 3항에 따르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평양선언은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산림 분야 협력 △개성공단·금강산관광사업 △서해경제공동특구 △동해관광특구 조성 사업 등이 포함됐다. 앞서 정부는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산림 분야 협력 등을 위해 내년 추가 예산 2986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재정적 부담이 예상되는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이 (이미 국회 동의를 요청한) 판문점선언에 포함됐다고 해서 이 사업들을 담은 평양선언은 국회 요청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며 “필요 인력, 시기 등 사업을 더 구체화해 평양선언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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