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투자,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최대 폭 감소

노사관계 경직성이 미래 전망마저 어둡게 해

한국 경제의 근본 패러다임 변화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경제에 경보음이 연신 울리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와 조선산업은 흔들린 지 오래됐고, 잘 나가는 반도체는 중국의 추격세가 매섭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이끌 ‘교체선수’가 없어 신산업은 실종되는 현실이다.

한국 성장률은 해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해 3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이 0.6%로, 0%대 중반 성장세를 이어갔다. 투자 감소 지속으로 올해 한국은행이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 2.7%를 달성하기에도 여유롭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을 보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400조2천346억원으로 전분기 보다 0.6% 증가했다. 이는 금융시장 전망과 비슷한 수준이다. 분기 성장률은 올해 1분기 1.0%로 간신히 1%를 넘겼으나 2분기에 0.6%로 내려간 데 이어 3분기에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세부 내용도 2분기와 흡사하다. 수출은 반도체 중심으로 호조를 이어갔고 소비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건설과 설비투자 조정이 계속됐다. 민간소비는 0.6% 늘었다. 화장품과 의류 등 소비가 늘어나며 2분기보다 개선됐다.

정부소비는 1.6%증가했다.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이 확대된 영향이다.

건설투자는 -6.4%로, 1998년 2분기(-6.5%) 이후 감소폭이 가장 컸다.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이 모두 줄었다. 설비투자(-4.7%)는 2분기 연속 감소를 기록했다. 운송장비는 늘었지만 기계류가 줄었다.

수출은 3.9% 증가하며 성장을 견인했다. 수입은 -0.1%였다. 화학제품이 증가했지만 기계류가 감소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2.3%로 1년 만에 가장 높았다. 반도체 등 전기 및 전자기기가 중심이 됐다.

건설업은 -5.3%로 역시 1998년 2분기 이후 20년여 만에 최저였다. 서비스업은 증가율이 0.5%로 전분기 수준이었다. 금융 및 보험, 문화 및 기타서비스업 등에서 둔화했다. 도소매 및 음식숙박은 증가율이 0.8%로 2분기와 같았다. 내수 기여도(-1.1%포인트)는 2011년 3분기(-2.7%포인트) 이후 최소다.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0.2% 증가했다. 3분기 전년 동기대비 성장률은 2.0%로 9년 만에 최저다. 작년 3분기 추석 효과가 더해지며 큰 폭 성장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 관계자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생각하면 0%대 중후반 성장률이 부진한 것은 아니다"라며 성장전망 경로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4분기 성장률이 0.8%에 달해야 올해 2.7% 성장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성장률 저하가 전망되면서 경제 패러다임 변화가 시급하다는 주문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어두운 전망들을 쏟아내고 있는 게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2.7%로 하향 전망했다. 지난해(3.1%)보다 0.4%포인트나 떨어진 수치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18년 아시아 역내 경제전망 수정'을 통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9%로 낮췄다. 미국·중국 간 무역분쟁 등에 따른 수출 감소가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내년 성장률도 2.9%에서 2.8%로 내렸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간 경제전망'을 통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7%로 기존 대비 0.3%포인트 낮춘바 있다.

내년 성장률 전망 역시 3.0%에서 2.8%로 내려 잡았다. 골드만 삭스, 노무라, UBS 등 해외 투자은행(IB)들도 당초 3%로 예상했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 2.8%, 2.9%로 하향 제시했다.

우리 경제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주된 이유로는 30년째 반도체를 앞세운 전자와 자동차·조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꼽을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주력산업이 휘청이는 가운데 넘치는 규제에 신산업마저 자리를 잡지 못하면 한국의 성장 사다리 자체가 무너진다는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설상가상 노사관계 경직성이 조기 해결 전망마저 어둡게 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내놓은 국가경쟁력 지표를 보면 한국은 140개국 가운데 종합 15위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대비 2계단 상승했기에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만족스럽다 하기도 어렵다. WEF는 특히 한국 노동시장을 73위로 낮게 평가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강력한 기득권을 깨뜨리지 못한 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고착화하며 노동시장은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이다. 정리해고 비용(114위)과 노사협력(124위) 등은 바닥인 게 뒷받침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고용보호 완화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확대 등 구조개혁을 10년 안에만 시행하면 연평균 잠재성장률을 0.6%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는데 현재로선 기대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평가에서 노동시장 효율성은 63개국 중 53위에 그치면서 종합 순위(27위)를 끌어내렸다. 과도한 독과점 수준, 서비스업계 경쟁 제한, 왜곡된 보조금 영향 등도 국가경쟁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규제가 부른 경쟁력 저하이기에 규제 혁파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구조개혁으로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쟁력 있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지 않으면 성장률을 높일 수 없음을 직시해야겠다. 무엇보다 ‘산업의 뿌리’인 제조업 회생에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길 기대한다.

우리 경제는 그동안 세계 경제 호황과 수출에 기대 그나마 현재 수준의 성장을 유지했는데 이젠 미·중 무역분쟁과 신흥국 불안 등 앞날은 가시밭길뿐이다. 소득주도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구조개혁과 기업혁신으로 돌리는 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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