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공공기관 투자 26.1조… 유턴 대기업에 세제 등 지원

자금의 선순환은 경제 활성화의 필요조건이다. 인체의 혈액순환이 잘 돼야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듯 자금이 기업, 정부, 가계에 원활하게 돌아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시장 상황으로 인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이 대기성 단기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비정상적 현실이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 분석’ 2018년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곳간에 쌓아놓은 자산이 59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늘고 있는 게 뚜렷하다. 기업 현금화 자산은 2009년 337조9천970억원에서 9년 동안 1.8배 늘어났다. 2013년 423조1천120억원으로 400조원을 돌파한 뒤 2년 만인 2015년(544조4천330억원) 500조원을 넘어서는 등 증가세가 가속화됐다. 증가율을 봐도 2009~2012년엔 3~4%대였으나 2013년 11.8%, 2014년 10.8%, 2015년 16.1%로 고공행진했다. 기업 현금화 자산이 급증한 2013∼2016년 증가분은 171조6천660억원이다. 이 기간 당기순이익 총합은 412조6천240억원이기에, 기업들이 번 돈의 41.6%를 모아두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사내유보금이 갈수록 늘고 있는 주된 원인은 자금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데 있다. 연 1.5%대의 저금리가 오랜 기간 이어지고,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한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자금 흐름의 고전적 ‘법칙’마저 흔들리고 있다. 통상 금리가 내려가면 주식형 펀드 시장에 자금이 들어와야 하지만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증시까지 힘을 잃어 MMF나 채권형 펀드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게 뒷받침하고 있다. 돈이 이렇듯 넘쳐나는 이유는 정부가 경기 부양대책으로 시중에 돈을 푼 데다 돈이 수출 및 내수산업 등 생산 활동으로 흘러가지 못한 탓이다.

당국이 단기 부동자금의 물꼬를 터주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이유다. 정부는 규제를 적극 완화해 금융회사가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투자 효과, 이른바 '낙수효과'가 약해지면서 대기업 중심 성장이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장과 고용이 선순환을 이루려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내수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자금이 생산적으로 돌 수 있다. 정부가 이를 인식, 기업들이 내년 상반기에 2조3천억원 이상을 공장증설 등에 앞당겨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선다. 일자리와 직결된 기업투자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행정처리나 이해관계 조정을 서두르는 것이다. 또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연내 15조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 중소·중견기업의 시설투자를 지원한다.

경남 창원 등에는 스마트산단 구축을 검토하고, 유턴 대기업에는 세제·보조금·입지지원을 강화한다. 주요 공공기관 투자는 내년에 8조2천억원 확대되며, 연내 선정하는 지역 공공투자 프로젝트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등 추진에 박차를 가한다.

정부는 24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최근 고용·경제상황에 따른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2조3천억원 이상의 조기착공을 지원할 계획이다. A기업의 포항 영일만 공장증설에 필요한 부지를 조기 공급하고, B기업의 여수 국가산단 내 공장증설을 위한 부지매립을 지원해 각각 1조5천억원과 4천500억원을 앞당겨 투자하게 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올해 안에 산업은행과 기업은행[024110]을 통해 15조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 중소·중견기업의 산업구조 고도화나 환경·안전을 위한 시설투자를 지원한다. 두 은행이 시설투자 소요자금의 80%가량을 대출이나 출자 등을 통해 지원해 리스크를 분담하거나 소요자금을 저리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모든 설비투자에는 감가상각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하는 가속상각을 확대 적용한다.

정부는 또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경남 창원 등에 대상 산단을 선정한 뒤 올해 안에 스마트산단 구축에 착수한다. 유턴 대기업에는 중소기업 수준으로 보조금 지급이나 세금감면 등의 지원을 확대하고 입지지원도 강화한다.

해외사업장을 청산·양도하거나 유지·축소하고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규모와 관계없이 모두 입지설비보조금을 기업당 최대 100억원 지원받을 수 있다. 법인세나 관세 감면, 산단 우선 입주나 장기임대 시 임대료 감면, 국유재산 수의계약 허용 등의 혜택도 준다. 공공기관의 주거, 환경·안전, 신재생에너지 분야 투자는 올해 17조9천억원에서 내년 26조1천억원으로 8조2천억원 확대된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생활 사회기반시설(SOC) 투자와 개방도를 경영평가에 반영해 투자확대를 유도한다. 정부는 또 연내에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큰 광역권 교통·물류기반·전략사업 등 공공투자 프로젝트를 선정해 신속한 추진을 지원한다.

선정된 신규사업은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혜택을 받는다. 효용성 낮은 접경지역 내 군사 보호구역은 연내 해제되며, 개발제한구역 내 체육시설 등 생활 SOC 시설 설치제한은 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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