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혁신 방안 논의하고도 숙박공유와 탄력근로 결론 보류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과학기술 혁명과 생활의 급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다. 무한대의 글로벌 경쟁을 동반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4차 산업혁명시대 글로벌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선 기업에 자율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부처 간 칸막이에 막히거나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가늠하지 못해 뜨뜻미지근한 사물인터넷(IoT)과 드론, 자율주행차, 바이오헬스 및 원격진료 등 신산업 분야가 규제로 인해 발전 기회를 잃고 있다.

전문 연구기관의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매사추세츠공대(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발표한 세계적인 혁신기업에 한국 기업은 1개도 없고 중국은 7개나 포함됐다. 규제의 사슬을 풀지 않으면 혁신도, 성장도 없음을 뒷받침한다.

국내 연구기관 평가에서도 한국은 4차 산업 5대 기술역량에서 주요국 중 최하위권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한국특허전략개발원 등이 한국과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의 4차 산업혁명 기술 역량을 평가한 결과 총 136종의 하위 기술을 아우르는 인공지능(AI)과 IoT,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지능형 로봇, 3D 프린팅 등 5대 핵심 상위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평균 80.6점(2017년 기준 전문가 평가)이라는 충격적 평가를 받았다. 이는 미국(100점)과 EU(94.9점)는 물론이고 일본(87점), 중국(81.2점) 등보다 낮은 것이다.

기업에 자율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인들은 세계 흐름과 역행하는 규제로 인해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잃는 것은 우리를 자승자박하는 과잉 규제 때문”이라고 개탄하고 있을 정도다.

정부가 뒤늦게 규제 혁신을 통해 신시장 창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카풀(승차공유)이나 원격의료와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4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는 혁신성장의 일환으로 핵심규제 혁신 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는 최근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등도 다뤄졌지만, 부처 간 의견 차이로 대책에 포함되지 못했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의 운전자 모집에 맞서 일부 택시 기사들이 집단으로 운행을 중단하는 등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 제고를 위해 신 교통서비스를 활성화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방안 마련을 병행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는 데 그쳤다. 카풀 합법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기나 방식 등 구체적인 내용은 빠졌다는 지적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 직후 차량공유 서비스 사업을 추진하는 ‘벅시’의 이태희 대표 등 민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공유경제 등을 주제로 회의를 열었으나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는 차량공유 서비스의 대표주자인 쏘카와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도 빠졌고,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택시업계도 불참하는 등 실효성 있는 논의가 나오기에는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원격의료 등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이 첨예한 사안도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는 비의료기관이 제공하는 건강관리서비스 범위·기준을 설정해 스마트폰·웨어러블기기 등을 활용한 건강관리시장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공유에 관해서는 정책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허용범위 확대와 투숙객 안전 확보 등 제도정비 병행’이라고 하지만 내국인을 상대로 도시 지역 내 숙박공유를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 의지만으로 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런 실정이기에 우리 기업인들은 세계 흐름과 역행하는 규제로 인해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기업 투자, 일자리 창출, 기업 경쟁력 등을 뒤처지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규제가 풀리지 않으니 네이버와 카카오가 서울 대신 도쿄에 투자를 하게 됐다. 네이버는 20일 일본 모바일 메신저 자회사 라인에 7천517억원을 투자한다. 일본 라인은 모(母)회사의 투자금에 일반 투자자 자금까지 1조5천억원을 확보해 간편 결제 서비스인 라인 페이와 보험·대출·증권과 같은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사업에 집중 투자한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이 신규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서울이 아닌 도쿄를 선택한 것은 충격적이다.

카카오도 올 초 블록체인(분산 저장 기술) 개발 자회사 '그라운드X'를 일본에 설립했다. 설립 후 4개월간 직원 약 100명도 채용했다. 이처럼 규제에 발목이 잡힌 기업들이 해외에서 대규모 신사업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규제가 풀리기만 기다리다 사업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는 다급함이 배경에 있다.

중앙정부차원에서 미래 먹을거리인 4차 산업육성을 위한 적극적 지원이 요청된다. 속도감 있게 규제를 혁파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미국은 연방정부 주도로 ‘규제 다이어트’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투 포 원 룰(two for one rule)’을 도입했다. 신규규제 한 개에 기존규제 두 개를 폐지한다는 행정명령이다. 영국 정부는 규제 총량을 줄이는데 힘쓰고 있다. 영국에선 새 규제가 생길 때마다, 기존 규제가 3개씩 사라진다. 2010년 도입한 ‘원-인, 원-아웃(One-In, One-Out·신규 규제 1건 만들 때마다 기존 규제도 1건씩 없애는 내용)’ 규제 비용 총량제를 2016년 강화한 결과다.

선진국이 이처럼 앞서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답답한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위 등 당국은 우리의 현주소부터 제대로 파악 후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한국은 인프라 수준이 높지만, 핵심 기술은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고 산업 생태계가 취약한 편인 점을 고려, 법·제도·규제 등이 빠른 기술 변화 속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몰법(시한을 둔 법)과 네거티브 규제(금지 사항 외에는 나머지 허용)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부의 4차 산업 육성 의지를 현장에서 체감하고 산업 경쟁력 제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규제는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 족쇄와 같은 존재다. 말로만 규제개혁을 외치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영원한 낙오자가 된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 물론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은 대화와 타협의 장을 신속하게 마련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첨단정보화 시대다. 우리가 대비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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