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파탄 낸 ‘통신매체이용음란죄’

 

가정을 파탄 낸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두 번의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국 성범죄자 낙인이 찍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하소연 할 곳도 없습니다”

 

A씨는 2013년 12월 13일 B(여)씨에게 강간 등 혐의로 고소를 당해 1·2·3심에 걸친 재판 끝에 처벌을 받았다. 그 뒤 “재판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한 그는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이끌어내 다시 한 번 대법원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모 지역 공무원인 A씨와 B씨는 B씨가 초급 공무원 시절인 1990년 처음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은 업무상 도움을 주고받으며 좋은 감정을 유지했다. 그러던 중 단체 회식이 있던 어느 날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후 20년 동안 근무지도 겹치지 않았다. 서로를 잊고 지내던 두 사람은 2011년 8월 같은 근무지에 발령을 받으며 재회했다. 이들은 다시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얼마 뒤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인간관계’는 B씨의 남편이 이들의 불륜사실을 알게 되면서 ‘법률관계’로 전환된다.

B씨는 2013년 12월 13일 A씨를 강간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를 했다. 그는 고소장에 “A씨가 지위와 나이를 이용해 폭력과 협박으로 강간을 하고 장기간에 걸쳐 메일과 핸드폰 톡을 통해 괴롭혔다”며 “가정이 파탄 나고 자식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밝혔다.

A씨는 당황스러웠다. 내연관계였던 것은 맞지만 강간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경‧검찰 조사에서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하지만 A씨는 강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상습협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1심 재판부는 상습협박과 통신매체이용음란의 점을 인정해 징역 1년에,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내렸다.

다만 강간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은 그 진실성과 정확성에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력이 있다고 할 수 없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행사한 유형력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1심판결 중 유죄부분(상습협박, 통신매체이용음란)을 파기하며 벌금 700만원, 성폭력 치료프그램 40시간으로 형을 변경했다.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중 일부가 협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고, 협박 범행에 관하여 A씨에게 상습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6년 1월 28일 대법원의 상고기각판결이 내려지며 재판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억울함을 참지 못한 A씨는 밤낮으로 법조문을 들여다봤다. 그러던 중 유죄를 받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이 자신에게 잘못 적용됐음을 발견했다.

이에 대한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2012. 6. 13.부터 2012. 8. 14.까지 23회에 걸쳐 66건의 문자메시지를 피해자에게 보냈다. 이로써 피고인은 자기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글을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하였다”

A씨는 1·2심 재판부가 위 범죄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다’고 규정한 형법 제1조 1항에 따라 행위시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죄행위의 기수 및 종료시점이 2012.8.14.이므로 당시 행위시법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법률 제11162호, 2012.1.17., 일부개정)은 통신매체이용음란죄를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는 “만약 1심과 2심 재판부가 재판시법이 아닌 행위시법을 적용하였다면, 피해자는 위 음란 메시지를 2012. 8. 14. 모두 인식하였음에도 이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난 2013. 12. 13. 위 사실에 대해서 고소를 한 것이다”며 “이는 고소기간이 다 끝난 후에 이루어진 고소라서 적법·유효한 고소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친고죄에서 고소가 제기되지 않은 채로 공소가 제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통신매체이용음란의 점에 대해선 유죄판결이 아닌 형사소송법 제327조 2호에 따라 공소기각판결이 선고되어야 한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A씨는 검찰총장에게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형사소송법 제441조는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총장은 A씨의 의견을 받아 들여 2017년 1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기록을 살펴보아도 법원이 이 사건을 비친고죄로 심리·판단하였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 피해자가 피고인이 음란메시지를 전송했다는 사실을 고소 제기일인 2013. 12 .13.을 기준으로 1년 이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어떠한 자료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위 법원은 위 피해자가 고소기간 내에 고소하였음을 전제로 하여 친고죄인 위 사건에 대하여 유죄의 실체 판단에까지 나아간 것으로 보일 뿐이다”고 판시했다.

A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1·2심 증인신문조서만 살펴봐도, 피해자는 2013. 12. 13.을 기준으로 1년 이전부터 피고인이 음란메시지를 전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아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한탄했다.

이후 A씨는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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