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어 EU도 '장벽' 친다.. 한국 철강, 샌드위치 신세

[시사경제뉴스=이범석 기자] 미국발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에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6일(현지 시각) 철강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이달 중 잠정 발동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미국이 지난 3월 고율의 철강 관세를 부과하자 "수출이 막힌 철강이 유럽으로 덤핑될 우려가 있다"며 3월 말부터 세이프가드 조사를 벌여왔고, 5일 표결을 진행했다. 28개국 중 25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3개국은 기권했다. 미국이 무역 장벽을 세우자, 유럽도 자국 이익을 지키겠다며 단합한 것이다. 한 나라에서 시작된 보호주의 무역 조치가 세계로 확산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호 장벽 도미노 확산

 

<자료제공 = 머니투데이>

출발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철강 덤핑으로 국가 안보가 위협당하고 있다"며 지난해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 폭탄을 부과했다. 철강 공급 과잉을 초래한 중국을 주로 겨냥한 조치였지만, 일본·러시아 등 다른 나라까지 수출길이 막혔다. 그러자 주요 철강기업들은 유럽·동남아 등지로 수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유럽이 세이프가드를 결정한 이유다.

 

문제는 향후 더 많은 나라가 무역 전쟁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수출국으로 이번 무역 전쟁을 촉발한 책임이 있어 철강 무역 장벽을 세울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글로벌 철강 생산이 중국·일본 다음으로 많은 인도 등 자국 철강산업이 발달한 나라들은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각국의 38조원 상당 제품에 관세 폭탄을 부과하는 무역 전쟁을 지난 6일 시작했다. 미국은 또 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자동차 관세 부과를 위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진행 중이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통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구조적인 변화로 인식해야 한다"며 "관세뿐 아니라 각종 비관세 장벽을 동원해 외자 기업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세계에 퍼질 조짐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수출 70%로 줄었는데 유럽까지

 

국내 철강업계에 EU의 세이프가드 발동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미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지는 대신 미국 정부가 요구한 수출 할당제(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의 70%)를 수용했다. 포항에 공장을 둔 철강업체 넥스틸의 경우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500억원을 들여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기로 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미국 철강 수출은 지난 2월 30만8850t에서 5월 15만865t으로 반 토막 났다. 한국무역협회는 올 하반기 철강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7.5% 감소한 161억달러로 전망한다.

 

여기에 EU까지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이 유럽에 수출한 철강은 313만t(약 3조원)으로 인도·터키·중국에 이어 넷째로 많다. 미국의 철강 관세가 한국의 중소·중견 기업에 큰 타격을 줬다면, 유럽의 세이프가드는 대기업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요 수출 제품은 세아제강 등이 생산하는 파이프 같은 강관류이고, 유럽 수출 철강 90%는 포스코·현대제철 등이 생산하는 판재류다. 한 대형 철강업체 관계자는 "선박·자동차 등에 쓰이는 판재류는 고로(高爐)를 보유한 대기업들의 주력 품목으로 미국 조치보다 타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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